ISIP는 이미 ‘ICS 정화와 소통’으로 널리 알려진 이영현 트레이너가 창안한 스피리츄얼 트랜스 작업, ‘ICS 영적 통찰 프로세스’(ICS Spiritual Insight Process)의 약자입니다.
ISIP는 최면적인 전생 및 출생 이전을 다루는 영적 트랜스 워크, 전생과 카르마 등의 영적 주제들에 대한 통찰을 포함하는
확장된 6가지 수준의 영적 통찰 테크닉을 최면 세션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하나의 과정으로 구조화한
스피리츄얼 트랜스 워크과정입니다.
KMH의 기본-고급 과정을 수료한 전문가라면 최면분석이나 역행 테라피(ART)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자발적인 전생상황을 다루기 위한 '영혼 통찰 기법' 에 대해 기억할 것입니다.
ICS 영적 통찰 프로세스는 이를 다차원 적인 통찰 기법으로 확장시키고 프로세스화한 이영현 선생의 독립적인 체계로,
‘ICS 정화와 소통’의 개념, '울트라 뎁스 프로세스’의 철학과 마인드 모델을 포함하는 제3세대 최면 패러다임을 종합적인 바탕으로 합니다.
‘ICS 영적 통찰 프로세스’의 이영현 트레이너는 울트라 뎁스의 전 상태들을 모두 성취하고 나아가 제드 상태(라메이 상태)까지 경험했던 소수의 사람들 중 한명이며, 누구보다 잠재의식이 물리적인 현실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몸소 체험한 사람들 중 한명입니다.
이영현 트레이너는 그녀의 잠재의식 ‘케오라’와 소통한 필자를 비롯한 몇몇 동료들에게 삶의 경로가 바뀔만한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물론 그녀가 이 상태들을 모두 성취한데에는 오랜 시간 실천하고 체화해온 ‘정화와 소통’이 밑거름이 되었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미 ‘ICS 정화와 소통’을 실천하고 삶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잠재의식의 힘을 체감하고 있을 것입니다.
ISIP는 10여년 동안 이영현 선생이 최면상담가이자 최면 트레이너로서 ‘ICS 정화와 소통’이라는 기반에 잠재의식 ‘케오라’와 소통하며 수많은 내담자들과 종합 최면세션 과정을 진행하고 적용해온 과정의 결과물입니다.
이영현 선생은 최면상담가이자 트레이너로서 그녀의 경험과 제드상태를 직접 경험한 피험자로서 체험한 그 모든 경험들에
그녀의 잠재의식 ‘케오라’로부터 온 전생에 대한 소중한 통찰들을 녹여 보다 대중적인 일련의 영적 통찰 프로세스를 탄생시켰습니다.
‘ICS 영적 통찰 프로세스’에 포함된 전생이라는 주제는 ‘울트라 뎁스 프로세스’의 그것처럼 의식의 탐구를 위해 극도의 깊이와 경험을 끌어내는 작업은 아닙니다.
이것은 그와는 별개의 라인으로 일반적인 최면상담에서 행하는 역행 테라피나 내담자 중심 파츠 테라피 등을 적용할 수 있는 최소수준의 최면 깊이에서도(중간최면 또는 깊은최면의 경계) 보다 대중적인 적용이 가능한 통찰 테크닉입니다.
이 프로세스는 단지 전생이라는 영역에 한정되어있지 않으며, 다차원의 수준에서 단계별로 영혼적 통찰 기법들을 경험함으로서 일련의 영적인 통찰 프로세스를 완성하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치유적인 최면 역행 테라피의 연장선에서도, 또는 단독적인 통찰을 위한 세션으로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ICS 영적 통찰 프로세스’의 각 기법들을 뜯어보면 기존 해외의 몇몇 최면가들이 행하는 영혼 통찰류의 작업들과 일부 유사한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외관만으로 이 프로세스를 그것들과 동일하게 생각한다면 이 프로세스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필자는 서구에서 유행하는 다양한 영혼통찰 관련 작업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지만 ‘ICS 영적 통찰 프로세스’에서 행하는 접근법은 정말 “아!” 소리와 함께 필자의 무릎을 치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그야말로 잠재의식의 전적인 지원으로 탄생된 프로세스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에고적인 상상으로 급조해서 겉보기에만 그럴듯하게 만들어낸 이론들과는 그 심도가 다릅니다.
특히 전생의 인격들을 대하는 관점과 기법들은 에고파트에 대한 이해를 포함해 잠재의식과 초의식을 관통하는 통찰이 없다면
나올 수 없는 접근이며 이 프로세스에서 가장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십수년이상 여러 나라의 최면 대가로 평가 받는 이들의 작업들을 직접 배우고 익혀온 필자에게도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한 관점이었을 뿐 아니라 본질적인 맥을 꿰뚫는 영감적인 통찰이 녹아있었습니다. 여기에는 도구에 대한 전문적인 깊이에 대한 이해와 내부구조에 대한 이해와 통찰, 삶에 대한 통찰 등 모든 것이 들어 있었습니다.
필자의 전문적인 견해로 ‘ICS 영적 통찰 프로세스’는 대중적인 치유적 활용으로도, 그 통찰 자체로서도 가치가 있는 존중 받아 마땅한 걸작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최면가들이 일반적 깊이의 최면에서 전생과 같은 영적 주제를 다루는 것에는 여러가지 주의해야 할 부분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이런 작업에 내담자의 풍부한 상상력이 부분적으로 또는 전적으로 포함될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무의식속 프로그램들은 너무나 교묘하여 때때로 적당한 스토리를 만들어 내담자의 문제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최면분석 등의 테라피 과정에서는 내담자가 가진 문제의 진짜 원인에 접근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영적 컨셉이나 전생스토리를 활용하는 경우도 있고, 또 문제에 대한 책임전가의 수단으로 전생을 작화해내거나 영적인 컨셉을 끌어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는 체계적으로 훈련되지 못한 최면사의 잘못된 유도암시로 전생스토리 자체가 작화되기도 합니다.
‘ICS 영적 통찰 프로세스’를 적용하는데 있어서도 주의해야할 전제가 있습니다. 이 프로세스의 효과를 최대치로 끌어내기 위해 바로 최면가와 내담자 모두 ‘정화와 소통’에 대한 중심과 가이드라인을 정확히 갖고 있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프로세스의 결과로 삶의 에너지가 변화하는 체험을 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최면가에게 이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무의식(기억과 프로그램의 저장소인 심층의식)에서 그럴 듯하게 올라오는 판타지와 잠재의식(에고 이면의 본질적인 의식)으로부터 올라오는 영감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그리고, 최면가도, 내담자도 결코 그것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정화와 소통에 대한 중심과 가이드라인을 정확히 지니고 있는 내담자라면 해당 경험에 대해 취할 부분은 알아서 잘 취하고, 버릴 부분은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명확한 중심이나 가이드라인 없이 ‘소통’자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많은 경우, 이런 체험이 단기적으로는 기분 좋고 큰 통찰을 얻은 듯한 경험이 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엉뚱한 길로 빠지게 만들거나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자신의 깊은 심층자원(프로그램)과 소통하고 그것의 액면적인 표현 그대로를 잠재의식(영감)의 메시지라고 믿어버리면서
자신의 무의식속 기저욕구(예컨데 특별함을 추구하거나 존경받고 싶은 기저욕구 등)를 만족시키면서
자신의 경험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또 다른 착각 속에 빠지는 경우들은 생각보다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나아가 이런 부분들에 심취하다 결국 자신을 관찰하지 못하고 소위 ‘감’과 ‘촉’을 내세우며 타인들에게 자신의 에고를 높이며 영적스승이나 특별한 존재로 자신을 포장하는 경우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원인은 전생이나 영적인 경험 이전에 현재를 사는 자신의 에고구조에 대해 무관심한 채로 주관적인 내적 경험의 액면적인 모습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들 무의식 속 프로그램과 욕구들이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특징들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필자는 ‘ICS 영적 통찰 프로세스’ 뿐만 아니라 최면에서 횡행하는 유사한 종류의 작업들,
특히 소위 상위자아 소환 등의 영적인 주제의 통찰작업인 경우라면 정화와 소통에 대한 가이드라인과 중심이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은 내담자와는 무턱대고 작업을 진행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는 개인적인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런 경험들 중 대부분의 정보들이 잠재의식(에고 이면의 본질적 의식)으로부터 오는 영감에 기반한 것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잠재의식으로부터 온 작은 소스에 무의식(프로그램된 심층의식) 속 자원이나 상상력이 더해져 표현될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또 다른 누군가는 모든 정보들이 잠재의식이 배제된 채 무의식(프로그램된 심층의식)의 표현으로만 진행될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결국 내담자의 본질적 에너지인 ‘잠재의식’이 이 작업에 얼마나 개입하고 주도하고 있는가입니다.
결국 그 핵심적인 키는 잠재의식이 쥐고 있는 것입니다.
단지 테크닉과 프로세스를 통해 현재의식에게 흥미롭고 재미있는 유희차원의 체험만으로
20세기에 접어들며 최면계는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20세기의 최면을 대표하는 많은 인물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핵심적 인물을 추린다면, 데이브 엘먼 선생과 밀턴 에릭슨 박사일 것입니다.
이들은 20세기 이후의 최면에 막대한 영향을 준 인물들이며 브레이드가 만들었던 과거 최면의 패러다임에 완전한 혁명을 일으켰던 인물들입니다.
밀턴 에릭슨 박사는 그의 경력에서 시간이 갈수록 직접적이고 권위적이었던 과거의 방식을 허용적이며 간접적인 방식으로 전환했습니다.
1980년대에 그가 사망할 때 즈음에는 그가 하는 거의 대부분의 최면치료를 간접적으로 행했습니다.
즉, 내담자는 그냥 의자에 앉아서 그와 이야기는 나누는 것 뿐 인데 어느 순간 그 문제가 해결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는 당시에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최면의 개념과는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을 사용했습니다.
그의 접근법은 로씨(Rossi)라는 사람에 의해 트랜스 상태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사용한다는 것을 뜻하는 ‘활용(Utilization)’의 방법이라고 명명되었습니다.
저자가 속한 최면 단체인 ABH(미국 최면치료 협회)의 수장, 테드 제임스 박사는 에릭소니안 최면의 핵심은 ‘표상체계의 모호성’이라 말하며,
에릭슨식 접근에서 앞서 언급한 ‘활용’을 빼버린다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만큼 이 ‘활용’의 중요성을 강조한바 있습니다.
오늘날 에릭슨 박사가 행했던 영감적이고 기적적인 작업들을 동일하게 구현하는 최면사들은 드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인해 탄생된 새로운 최면의 패러다임은 2세대 최면 패러다임의 한 가지 축이 되었습니다.
동시대를 살았으며 또 다른 최면 패러다임의 축을 만들었던 데이브 엘먼 선생의 관점 역시 당대로서는 매우 독특했습니다.
트랜스에 드는 것의 책임은 전적으로 최면사가 아닌 내담자에게 있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최면가들에게는 당연한 사실로 여겨지겠지만, 당시의 기성 최면사들에게 그것은 내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는 비판이나 저항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실제적으로 최면사가 내담자에게 강제할 수 있는 힘이나 영향력은 없으며 결국 모든 최면은 자기최면이라는 이 새로운 패러다임은 당시로서는 매우 선구적인 것이었습니다.
당시 이전의 1세대 패러다임을 지닌 최면 전문가들은 잠이라는 개념을 동반한 권위적인 방식을 사용했지만
이런 새로운 패러다임 하에서의 엘먼선생의 접근은 권위적일 수도, 허용적일 수도, 각성일 수도, 수면성일 수도, 직접적일 수도, 간접적일 수도 있는 방식들이 사용되었고 그러한 유도과정에서 오는 기법들 또한 매우 역설적인 특성을 가진 방식들이 사용되었습니다.
20세기를 거치며 이들이 사용했던 최면 패러다임이 확산되고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현대의 최면상담이나 최면치료에서 치료적인 ‘스크립트(대본)’의 가치는 현저히 줄어들게 되었고, 오늘날 이런 최면 스크립트는 초보자들의 연습용을 제외하고 직업적인 필드에서 사용되는 빈도는 매우 낮아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최면을 내담자와 낚시하듯 ‘걸고 걸리는’ 작용으로 이해하는 최면가의 수는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동 기간 동안 최면은 많은 타 분야의 과학적, 심리적 원리나 기법들과 결합되면서 광범위한 적용이나 활용도 측면에서 역사적인 큰 도약을 일구어냈지만
시간이 갈수록 원래의 메즈머리즘이나 1세대의 최면, 그 자체의 깊이와 파워는 오히려 쇠락하게 된 측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제로세대와 1세대, 2세대 초기의 최면가들이 연구하던 최면현상들은 오늘날 일반적인 최면사들이 경험하는 그것들과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대게 오늘날 전 세계 대부분의 최면가들은 이러한 2세대 패러다임의 영향력 하에 있습니다.
다만 한국의 경우 최면을 가르칠 수 있는 전문적인 인력이 여전히 부족한 편입니다.
몇몇 선구적인 트레이너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2020년에 이른 현재에도 이들 2세대 최면 패러다임조차 폭넓게 뿌리내려지지 못한 혼란기에 있는 실정입니다.
20세기 후반부터 3세대 패러다임을 지닌 소수의 최면가들은 독자적인 활동을 시작해왔고 점점 그 수가 확장되며 주류적 시장에서도 비슷하거나 유사한 패러다임을 말하는 최면가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3세대의 최면 패러다임의 키워드는 ‘통합’과 ‘성장’으로 대변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제로세대~3세대에 이르는 과정들을 보다 큰 틀에서 수용하며 종합하고 포함하는, 21세기에 점점 확산되고 있는 새로운 흐름입니다.
고전적인 일부 관점들은 확장과정에서 새로운 패러다임과 조화롭게 뒤섞입니다.
예를 들어 이 관점에서 메즈머리즘을 바라본다면 메즈머리스트가 피험자를 치유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집니다.
마그네타이저는 단지 생명에너지를 부가시켜서 피험자 스스로의 잠재의식이 행하는 자가 치유를 돕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최면분야에서 이런 3세대 최면 패러다임에 있는 대표적인 분야는 단연 ‘울트라 뎁스® 프로세스’라는 영역입니다.
울트라 뎁스® 프로세스를 이것의 대표주자로 꼽는 이유는 최근에 미국에서 등장하는 유사한 종류의 패러다임을 사용하는 체계나
개인적 인식들이 대게 UD 프로세스의 그것을 참고하거나 직간접적으로 영향 받은 경우들이 많을 뿐 아니라,
시스템적으로 UD 프로세스에서 행하고 있는 경험과 체계를 일부 불완전하게 모방함으로서 경험이나 완성도 면에서 미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울트라 뎁스® 프로세스에는 최면과 마음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포함하며, 심지어 비시티(Visity)라고 불리는 에너지(마그네티즘)적인 기법을 포함시킴으로써
이전 세대의 최면들에 대한 통합적 인식을 취하며 동시에 그것을 실제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3세대 최면 패러다임에서 우리의 마음을 바라보는 관점 중 가장 주목해야할만한 부분은 바로 ‘잠재의식’에 대한 부분입니다.
기존 최면계의 관점이 잠재의식을 무의식의 일부로 보거나 속이기 쉬운 멍청한 프로그램 정도로 인식해왔다면,
3세대 최면 패러다임 하에서 이것은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관점을 취합니다.
이것에 따르면 잠재의식은 생리기계적 반응을 만들어내는 뇌, 즉 무의식의 영역과는 완전히 구분되는 것으로 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최면, 아니 보다 넓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잠재의식의 역할은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비록 그것을 표현하는 용어는 다양하지만, 사실 우리의 에고(Ego)이면의 본질적인 자신에 대해 말하는 이 개념은
이미 기성 최면계가 아닌 철학, 종교, 심리학 등 각기 다른 분야들에서도 인류의 역사와 함께 줄곧 언급되어왔던 개념들입니다.
이 책의 전작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UD 프로세스는 월터 씨코트 선생과 제임스 라메이 선생을 통해 반세기가 넘게 이어져온 동일한 체험과 경험, 결과를 통해 이것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UD 커뮤니티의 전문가들은 그것을 이미 삶의 일부로 취하여 개인들의 내적성장으로 확대 적용하고 있습니다.
결국 3세대의 패러다임은 어떤 의미에서 기존의 최면이라는 이해의 영역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2세대 패러다임을 지닌 최면가들 중 일부는 UD를 포함한 이것을 스피리츄얼(영적) 최면이라 부르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영성이라는 별개의 카테고리가 필요한 것일까 의문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누구나 영적인 존재이며 이것은 특정한 부류의 인간만을 지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면상담에서도 더 이상 최면가가 일방적으로 내담자에게 정답을 암시하는 방식의 최면은 유효하지 않으며, 더욱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모든 문제에 대한 원인과 해결책은 내담자의 내면에 있습니다.
21세기의 3세대 최면상담이 지향하는 것은 바로 이런 '내담자 중심 최면상담' 입니다.
최면상담에서도 더 이상 최면가가 일방적으로 내담자에게 정답을 암시하는 방식의 최면은 유효하지 않으며, 더욱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모든 문제에 대한 원인과 해결책은 내담자의 내면에 있습니다.
21세기의 3세대 최면상담이 지향하는 것은 바로 이런 '내담자 중심 최면상담' 입니다.
내담자 중심 최면상담은 그것을 진행하는 최면상담가에게도 많은 훈련과정과 깊은 공부, 자기 적용과 성찰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런 쉽지않은 과정들을 소화하고 내담자 중심 최면상담이 체화된 최면상담가는 기존의 최면상담사들과 차별화 될 것입니다.
각 세대별 최면 패러다임은 각각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